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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雪洞야영기


날짜 : 2003.02.10. - 2003.02.12.
참석자 : 1진 - NAVAJO, 은하수, 패블, 하이디
2진 - ?


먼저, 게시판에 올리지 못하고 조용히 갔다온 점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요즘 게시판의 분위기가 심상찮은 면도 있으나
게시판의 활성화와 정보공유를 위해 과감히 후기를 쓰기로 결정해서 올립니다.
산무리회원님들의 이해와 아량을 베풀어주실거라 믿습니다.ㅎㅎ

예전부터 나바호선배의 설동야영법에 대해 얘기듣고
과연 우리나라에서 가능할까? 하며 호기심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선 미시령에서 신성봉능선방향이 가능하다고 하신다.
눈 많이 오는 해의 2월쯤에 지형적인 특성상 켜켜히 쌓여 눈처마에
설동이 가능하다고 해서 막연한 계획만 있었다.

드뎌 야영날짜가 정해지고 인원확보를 하는 데 다른 산행과는 다른 점이
번개형식으로 해서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갈수 없고,
무엇보다도 눈속에 묻혀 지낼려면 장비면에서도 고려하지 않을 수없다.

그리고 항상 유념해둬야할 점이 날씨다.

여차하면 중간에 탈출해야하거나 포기되거나...

그렇게해서 설동을 팔수있는 힘좋은 젊은 아그들도 섭외를 해보았지만
시간이 맞지 않고 다른 선약들때문에 사람이 안모아졌다.
그러다 어떻게 연결되다가 이렇게 네명이 1진으로 먼저 가고
2진 몇분이 토요일에 오기로 하는 계획이 세워졌다.

산행은 없다. 2박2일은 그냥 설동에서 개기고 오는 거다.
그래서 금요일밤 9시 강변역에서 모이기로 하고
나는 혼자 먼저 장을 봤다.

특성상 먹거리해결보다도 안주쪽으로 더 손이 가는 것이다.
네명 분의 장을 보고 모두 모였는 데 배낭들이 장난아니다.
산행이 없다고 해서 모두 여유있는 짐들을 쌌으리라.

은하수선배님차와 나바호선배의 차로 나눠 출발했다.
다행히 날씨는 따뜻하고 눈소식이 없고 길도 좋았고 눈도 많이 녹아있다.
눈이 녹는 걸보고 설동형성이 안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과 함께 미시령휴게소에
새벽1시 30분에 도착했다.

오버트라우저, 오버자켓, 스패츠, 장갑, 모자로 무장을 하고
짐들을 다시 정리하고 물까지 담자니 배낭의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이 밤에 적어도 30-40분 산행을 한다는 데...

나도 이렇게 무거운 배낭은 처음이리라...
미시령뒤로 능선을 타니 바람때문에 몸이 휘청거린다.
따뜻한 날씨 덕분에 칼바람은 아니지만 바람의 세기가 장난아니다.
그렇게 완만한 길을 15분정도 가서 나바호선배가 눈처마의 상황을 살피더니
더 갈것없이 더없이 좋은 장소를 발견한다.

속초가 내다보이는 방향으로 눈처마의 언덕을 내려온다.
눈처마 사면중간에 멈춰서 길을 만들고 입구할 곳을 찾아 파기 시작한다.
나바호선배가 가져온 피켈하나와 눈삽과 코펠뚜껑이 장비모두이다.
한명씩 교대하며 피켈을 가지고 눈두덩이를 파내기 시작한다.

여기서 여자라고 뺄수있는 입장도 아니다. 그리고 난 막내이지않나...^^V
한명씩 돌아가며 피켈로 찍으며 파내고 뒤에서 코펠뚜껑으로
눈잔해를 옮기고 은하수선배는 삽으로 눈으로 길을 다지고 눈을 버리는 작업을한다.

그러나 의외로 속도가 안붙는다.
좀 시간이 지나고 힘들다싶었는 데도 얼마 안파들어간것이다.
눈동굴을 파다보면 그동안 켜켜이 쌓인 눈의 나이테가 보이고
설층에 따라 눈의 단단함과 부드러움이 다르다.

그러나 위는 6미터정도 쌓인 눈이라 무너질 염려는 전혀 안한다.
입구는 좁게 하는 것이 원칙이고 바람을 막기 위해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방향을 틀어 파는 것이 원칙이나
우리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나 파다보니 나뭇가지의 출현이나 눈의
단단함정도에 따라 쉽지않다.

그리고 많은 인원이 참여못하는 이유를 알것같다.
네명이 잘수있는 공간을 만들기란 정말 끝도 없다.
눈처마의 완만한 사면에 굴을 파들어갔기때문에 입구엔 길도 없고
화장실역할도 마땅찮아 눈을 다듬어 작은 길을 만들며
술먹고 휘청거렸다가는 저 사면으로 뒹굴기 쉽상이다라며
더 신경써서 길을 만들고 나뭇가지하나 나온곳을 화장실이라 지칭해둔다.

나뭇가지잡고 일을 봐야할 필요성이 있기에... (잘못하다가는 구르니까..ㅎㅎ)
그렇게 아마 3시간30분을 파고 모두 녹초가 되어 겨우 마치고
마감질을 하며 천정엔 숨구멍을 서너개 정도 뚫어 놓고
입구엔 판초로 막으니 더없이 아늑한 설동이 되었다.

숨구멍도 하늘정면방향으로 뚫은 곳은 눈이 새어들어오고 녹는 정도가
제일 빨라 구멍이 커졌다. 그래서 어긋나게 뚫어야하는 것이라는 것을 경험상 알았다.

밤을 꼴딱새며 노가다를 마치고 나니 젖은 옷과 장갑과 신발이
얼지 않게 매트리스밑에 깔고 신발들여놓고 배낭은 밖에 둔다.
날씨가 다행히 춥지 않아 가능하지 않았나싶다.

모두 새로운 경험과 성취감에 들떠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보며
누룽지와 와인한잔을 먹고 겨우 자리잡고 아침7시쯤에 누워 잠을 청한다.

그렇게 피곤에 지쳐 잠을 얼마 안잤는 데 은하수선배의 전화통화소리에
잠을 깨게 된다.

오전 10시쯤 되었으리라...

토요일 오후에 출발하게 될 2진이 서울엔 비가 많이 온다며 거긴 어떻냐고 한다.
우린 판초가 덮힌 입구를 열어보니 흐리고 사락눈이 조금 오고 있다.
아무래도 2진이 오기 힘들겠단다.
그리고 우리 걱정을 많이 한다.
안부전화가 많이 오고 지리산갔던 팀도 전화와서는 남원에 비가 많이 내려
산행을 포기하고 올라갈려고 한단다.

은하수님도 선약이 있어 그 자리에서 일어나실 계획이다.
고생만 하시고 가시게 해서 죄송했고 선배도 많이 아쉬워했다.
그러나 서울까지 가시는 길도 걱정됐다.

눈은 적지만 계속온다면 길을 통제하게 되고 위험하니까 서두르신다.
필요없는 장비나 쓰레기를 담아 가시고 나의 야영장비가 허술해서 밤새 떨고 잔 터라
선배야영장비를 빌려주시고 사진담고 혼자 내려가시기로 한다.
기껏 10분가면 미시령휴게소이니 걱정없다.

모든 상황이 정리된 다음 우리는 더 룰루랄라한다.
야영장비와 먹거리와 취사도구가 완벽했고 만약 탈출해야한다면 미시령까지 굴러서도
가는 거리고 고생하며 파놓은 설동을 이렇게 두고 가기란 너무 아까웠다.
2박2일은 잡은 이유가 있었다.
만약 2진이 오늘 밤에 도착한다면 네명분의 설동을 우리가 파줘야하는 데
다시 젖어가며 작업한다면 너무 끔찍했는 데 못 온다니 잘됐다싶기도 했다.ㅎㅎ


시간은 2시를 넘어서고 있는 데 밖엔 사락눈이 계속 오고 온 사방이 하얀 설산으로 덮여
장관을 이루고 저 언덕너머엔 바람이 많이 불지만 우린 포근한 기운까지 느끼며
술상을 펴기 시작하고 입담좋은 나바호선배의 얘기로 꽃피우며 수다떨다보니
어둑해지고 지루하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끔찍한 보드카를 마지막으로 술상을 파하고 8시 30분쯤 잠자리에 들어
피곤과 술에 젖어 세상모르고 잔다.

 

자다가 중간에 볼일보기 위해 일어나 밖에 나가보니 눈은 그치고
하늘의 별은 반짝 반짝, 하얀 눈산이 그대로 보인다.

또 들어가 자고 아침에 눈뜨니 8시가 되었다.

밖에 나가니 미시령도로는 어제부터 통제되어 조용하기만 하고
따뜻하고 눈부신 설경이 눈은 못떼게 만든다.

이제 짐정리를 하고 과일과 아침밥과 차까지 마시고 짐을 다 싸니
11시 30분,, 여기를 떠나자니 너무 아쉽다.

아쉬움을 접고 10분만에 내려와서 보니 이제 통제가 해제되어 차들이 드문드문있다.
나바호선배의 차만 눈이 폭 쌓여있다.
무엇보다도 시동이 걸릴까하고 걱정했는 데 진짜 시동이 안걸린다.
따뜻한물로 녹이고 다른차에서 점프를 시도했지만 안되어
보험회사의 긴급서비스를 부르니 속초에서 레카차가 온단다.

가는 길이 지연될려나하고 걱정했는 데 레카차가 와서 점프하니 시동걸려서
우린 완벽한 여행의 마무리에 더 신났다.
1시간 정도 지체하고 눈덮인 설악산의 장관을 구경하며 미시령을
아무 문제없이 내려왔고 서울까지 거의 안막히고 도착했다.

모두 이번 설동계획의 성공과 새로운 경험의 황홀함에 감격했다.
그래서 나는 몰래가는 산행에 대한 질책을 무릎쓰고 정보를 나눴으면하고
후기를 써본다.

이런 계획을 제안하고 이끌어주시고 진짜 완벽한 장비로 성공을 이끌어주신
나바호선배님께 감사드리며
의외로 완벽한 장비로 남은 사람들 따뜻하게 지내고 고생만 하다 먼저내려가신
은하수선배님... 내내 안부전화와 맛난 짜장면 저녁을 사줘서 고맙습니다.
남겨주신 과일이 아침 숙취에 얼마나 좋던지...ㅎㅎ

부러울정도로 완벽한 장비, 패블언니도 같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매트리스 두개깔고 제일 포근하게 주무셨죠?ㅎㅎ

저는 막내라는 이유로 넘쳐나는 힘자랑밖에 한것이 없네요.
부실한 장비로 추위에 좀 떨었습니다. 장비의 힘!!! 새삼 알았습니다.
잊지못할 야영이었습니다.

그리고 눈이 있는 겨울동안 우리 설동을 예약받습니다.
가실분은 저에게 연락주세요. 예약받아 제가 관리하겠습니다.
혹시나 겹치면 서로 난처하겠죠. 혹 이미 살고 있을 야생동물과는
현장에서 협의해서 결판내세요.^^

장소는 정말 찾기 쉽답니다.

미시령휴게서의 뒷편으로 15분정도 가다보면 태양열집열소같은 초소가 있는 데
거기 바로 동쪽편 아래입니다.
색다른 경험을 하실겁니다.
장갑을 여럿 준비하시고 두둑한 야영장비를 준비하세요.

눈덮힌 설악산... 정산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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